취미/도서
181004_역사의 역사
ciuciu
2018. 10. 4. 13:18
역사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재미는 서사와 스토리텔링에 반응하는 본능에서 오는 것일게다.
인문학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후세에 길이 남을 '역사서' 한 편을 쓰는게 아닐까 싶다. 저자인 유시민도 이제 당대의 지식인을 넘어, 사마천이나 E.H. Carr 처럼 역사의 역사에 남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역사 서술의 Histroy를 정리한 책이다.
서구 역사의 창시자로 불리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부터, '사마천', '이븐 할둔', '랑케', '마르크스','박은식,신채호,백남운','에드워드 H.카','토인비','헌딩턴','재레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까지의 역사 서술에 관한 관점의 차이와 그 전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소개한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몇몇 읽은 책들에 대해서는 저자가 바라보는 관점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다. 사마천의 사기는 '사기열전'을 통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을 모습과 처세술에 대해 배웠고,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대학교 시절에 역사 인식의 관점을 정리하는 교양서로써 공부했었다. 최근에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의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에 감탄했다.
흔히들 '역사란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란 역사가의 시선에서 쓴, 즉 역사가의 관점이 들어간 해석이라고 봐야 한다. 역사뿐 아니라 신문 기사를 포함한 모든 저작물이 다 그러하다. 우리가 객관성을 담고 있다고 믿는 신문 기사나 뉴스 조차, 신문사의(방송사의), 편집 국장의 (보도 국장의), 신문 기자의 (방송 기자의) 이념적 편향성을 담고 있다.
< 유시민 저 / 돌베개 / 2018년 초판>
요즘은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팩트를 크로스체크하는 일이 보통 사람들에게도 가능한 이상, 어떠한 글을 쓰든지,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철들어 가고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은 바로 그런 능력들을 익혀 가는 과정이 아닐까도 싶다.
한 여름을 지적 활동으로 채워 주는, 지식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주는 그런 책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책 속에서>
o 우리가 옛 역사서를 읽는 것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대문이다. (P52)
o 과학혁명을 가속화한 21세기의 인류는 지구적인 문제를 만들어 냈다. 지구 온난화, 바다 오염과 해수면 상승, 대규모 멸종, 대기권 오존층 파괴, 인구 폭발과 자원의 고갈, 지구 생태계를 수십 번 파괴할 수 있는 양의 핵무기. 이런 문제는 모두 국민국가 시대의 산물이지만 국민국가 체계에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피엔스는 여전히 '부족 본능'에 끌려 살아간다. 자신이 속한 문명만 선(善)으로 여기며 자기가 속한 국가의 이익에만 관심을 쏟는다. (P53)
o 진보에 대한 믿음은 자동적이거나 필연적인 과정을 믿는 게 아니라 인간 잠재력의 지속적인 발전을 믿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인 목표는 역사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역사의 과정에서 생겨난다. 나는 인간이 완전하다거나 지상천국이 오리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도전하고 성취해 냄으로써만 그 정체를 밝히고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 우리가 상상할 수 있거나 상상할 필요가 있는 한계에 굴복하지 않는 진보의 가능성에 나는 찬성한다. 그러한 진보의 개념이 없이 어떻게 사회가 생존할 수 있겠는가. (역사란 무엇인가 179쪽) (P238)
o 쓰는 사람은 어떨까? 역사가는 존재의 유한성(有限性)을 넘어서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유지할 만한 사건과 사실을 이야기하고, 거기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한다. 역사가는 또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해 타인의 이해와 공감을 받으려 한다.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한 사람은 수백 년 수천 년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역사가와 역사서에 대한 르포르타주다. (P316)
o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 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꿈과 욕망, 사람의 의지와 분투, 사람의 관계와 부딪침, 사람이 개인이나 집단으로 겪은 비극과 이룩한 성취, 사람이 세운 권력의 광휘와 어둠, 사람이 만든 문명의 흥망과 충돌과 융합에 관한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 제도와 자연 환경이 뒤엉겨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P318)